33년
(C)箱舟の聖母社


“33년”(62) “크리스챤 추방령”
 

운명의 날, 1614년2월1일이다. 바쿠후는 전국적인 금교령 크리스챤 추방령을 내렸다. 이 알림이 사타케 요시노부에게 전해졌을 때 요시노부는 재빨리 페토로히토미의 부교직을 면하고 데바로부터 추방했다. 사타케 요시노부는 페토로우메즈에 대해서는 크리스챤 신앙을 버리게끔 설득하였다. 만약 그가 크리스챤 신앙을 버리면 다른 크리스챤들을 박해하지 않는다고 조건을 냈다. 페토로우메즈는 이 조건에 응했다. 전하님은 약속을 지켰다. 데바에서는 이 두사람외 아무도 박해를 받지 않았다. 이 때로부터 페토로우메즈는 출세의 길을 순조롭께 밟아 드디어 국가노가 되었다. 이로하여 두사람의 크리스챤 부교는 데바의 크리스챤들의 방패로 된 것이다. 이로하여 지하교회의 본거지에는 아무 박해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에도의 크리스챤들을 광산으로 이끌어들이는 일에 성공한 우마이 로구사에몬은 이 때 예수회가 오랜세월 전도하고 그 자신도 또한 많은 신자들을 보살펴 주었던 교토, 오사카, 후시미, 사카이의 지역에 있었다. 크리스챤 추방령이 내리기전, 작년 12월27일부터 이 해 1월27일까지 크리스챤 명보가 작성되었다. 명보에 적힌 크리스챤들의 이웃 사람들은 연루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특히 세집에 살고 있는 크리스챤들의 대부분은 쫓겨나 가족을 데리고 집도 없이 방황하기 시작했다. 로구사에몬은 자신의 양들이 집을 쫓겨서 길이나, 배나, 숲이나, 산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 가슴아파 그들에게 광산으로 도망가게끔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2월21일이 되자 신부, 수도사, 동숙, 전도사을 위주로 한 크리스챤들이 나가사키로부터 추방되고 교회가 부수어지고 크리스챤들을 쫓아내는 폭력이 더 심해져, 어디에 가나 크리스챤 도망자들로 넘쳐나는 상태가 되었다. 전국적인 추방령이므로 그들에게는 갈 장소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시스토들이 준비해 온 지하교회외 밖에 도망갈 곳이 없었다. 일전 시스토가 전체 지하교회에 내린 지령 대로 크리스챤 두목들과 호리고들이 그들을 마중왔다. 로구사에몬의 짐은 가벼워졌다. 이시미고로부터도 와 주었다. 많은 크리스챤들은 북쪽 광산으로 향했다. 로구사에몬은 자신의 양, 목숨을 걸어 보살펴 왔던 크리스챤들을 북쪽 광산에 배웅하면서 자신도 이 일이 끋내면 많은 양들의 가있는 북쪽 광산에가 그들을 계속 보살피려고 생각했다. 시중들어 오던 파도레들은 나가사키로부터 본국에 돌려 보냈다. 소속하고 있었던 아리마의 주재소는 박해에 의해 이미 없어졌다. 데라사와 후지효에이가 사는 곳으로 가서 살자. 지하교회의 중심, 본거지인 데라사와에 가서 살자. 로구사에몬의 마음속으로 이렇게 굳게 다짐했다.






2009年10月13日 UP
著者 ジャン・マリー神父・ソーンブッシュ・リトルヨハネ
(C) 箱舟の聖母社



〒012-0106
秋田県湯沢市三梨町字清水小屋14
箱舟の聖母社

 電話・FAX: 0183-42-2762
 Eメール:charbeljapan@nifty.ne.jp
 郵便振替 02260-0-91200


[ HOME ] [ 33년]
inserted by FC2 sys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