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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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1월, 또한번 오모리의 마을에서 이번에는 저번의 그 가게를 통째로 내서 축연을 베푼다고 한다. 로구사에몬도 급히 달려 왔으며 모여온 크리스챤 두목의 인수는 300명을 넘고 있었다. 전번의 축연은 크리스챤 두목들이 처음으로 얼굴을 보고 자기들의 지하교회의 발전을 확인하고 서로 격려하는 장소로 되었으며 모두의 정열을 높이는 결과를 가졌왔다. 이번에도 아주 좋은 타이밍으로 모두 모이게 되었다. 세키가하라의 싸움에서 패전한 영주들중 패전하여 죽었거나 처형된 크리스챤 영주가 다스리고 있었던 영국민의 크리스챤들이 많은 죽음을 당하고 또한 영지를 쫓겨나 헤매고 있었다. 미노의 3000명의 크리스챤, 구루메의 7000명의 크리스챤, 히로시마나 야마구치의 크리스챤들이다. 그들 중에는 부근의 광산으로 도망쳐 오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지하교회가 원래 목표로 하였던 기능이 발휘되기 시작된 것이다. 그들을 받아들인 크리스챤 두목들도 모인 지하교회의 큰 회의가 또다시 열렸던 것이다. 모두가 이제 한창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자기들의 대장과 여대장이 자유롭게 되였습에도 조국에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 남아서 자기들과 계속해 싸우는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매우 감동되었던 것이다. 하기에 그들 전원은 활기를 띠웠다. 특히 전번의 축연에 참가한 사람들은 시스토와 카타리나의 열렬한 조국애를 직접 보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조국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싸움을 선택하였다고 한다. 자기의 조국보다도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 이 모든것이 그들을 대단히 감동시키고 점점 두사람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모범으로 생각하게 된것이다. 병사가 대장을 신뢰하고 자랑으로 생각할수록 그 군대는 더욱 강하게 되는 것이다. 시스토와 카타리나는 조국에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희생시켰지만 그 대신 이 축연으로 크리스챤 두목이라고 하는 병사들의 관계를 강화시키고 의기를 높이고, 새로운 지하교회를 발전시킨다고 하는 보답을 얻을 수 있게 된것이다. 하나님은 시스토와 카타리나의 열심에 넓은 마음으로 보답해 주셨던 것이다.

로구사에몬은 노예로서 처참한 처지였던 이두사람, 항구의 배로부터 내려올 때부터 인상이 깊었던 그때의 모습을 상기하며 추억의 이야기를 시스토와 카타리나와 그날 밤 새벽까지 이야기했다. 첮눈으로 보았을 때부터 불가사의 우정. 확실히 시스토와 카타리나에게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광산의 건달뱅이들조차 두사람에게 심복하고 있다. 물론 나 자신도 그렇다. 지금까지의 두사람에 관한 모든 사건을 상기하면 아직도 알수 없는 그무엇인가 이제부터도 있을것 같다. 이 두사람을 만날 수 있은것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로 되는 보물이다. 자유롭게 되여 참말로 축하합니다. 7년이상이나 노예의 몸이 되였던 벗이 해방된 것을 로구사에몬은 마음속으로부터 기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9年1月26日 UP
著者 ジャン・マリー神父・ソーンブッシュ・リトルヨハ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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